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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경주시/가볼만한곳]통일신라시대의 왕릉으로 가장 잘 만들어진 괘릉

해맑은 웃음 2012. 6. 20. 00:09

 

 

 

 

 경주에는 수많은 왕릉들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최고를 꼽으라면 많은사람들이 괘릉을 선택하지않을까 생각된다.

 

 

 

 

괘릉은 능 입구에 세워진 석상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특히 강한 인상을 주는 무인상은 얼굴생김이나 표정, 수염 등으로 보아 동양인이라기보다는 서역인의 모습을 한 것으로

 

판단되어 당시 신라인들의 국제적인 교역관계를 생각케 하는 데서 주목을 끈다.

 

 

 

 

문인상 또한 후대 왕릉의 문인상이 나약한 문신의 모습을 하고있는것과는 달리 강하고 힘찬 모습을 하고 있다.

 

 

 

 

왕릉을 지키는 성서러운 동물인 사자상은 각 방향으로 얼굴을 향하고 있으며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가지고 있다.

 

무섭다기 보단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도 잘 조화를 이룬다.

 

 

 

 

사자는 불교에서 중요시하는 성서로운 동물로 조선시대 왕릉에는 호랑이와 양으로 바뀌었다.

 

 

 

 

괘릉은 신라 38대 원성왕의 능으로 추정되고 있는 왕릉으로

 

신라왕릉 중에서는 형식적인 면을 제일 잘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러져 있다.

 

 

 

 

괘릉은 토함산 자락이 들판과 만나는 낮은 구릉에 자리잡고 있으며,

 

봉분은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둘레석으로 둘러져 있고

 

그 바깥쪽에는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만든 난간을 설치해 놓고 있다.

 

 

 

 

정면에는 서구의 신전 제단처럼 생긴 웅장한 상석이 놓여있다.

 

 

 

 

흙으로 덮은 둥근 모양의 무덤 아래에는 무덤의 보호를 위한 둘레석이 있는데, 이 돌에 12지신상이 조각되어 있다. 

 

 

 

 

12지신상은 무복을 입고 무기를 들고있고, 오상(午像)만이 정면(남쪽)을 보고 있다.

 

또 자축인묘진사(子丑寅卯辰巳)의 6상은 오른쪽을 향하고 있고 미신유술해(未酉戌亥)의 5상은 왼쪽을 향하고 있다. 

 

 

 

 

즉 양 측면에서 모두 오상(午像)을 향하여 머리를 두고 있는 배치를 취했다.

 

봉분 주위에 이렇게 12지신상을 배치한 것은 신라 특유의 양식이며,

 

특히 괘릉의 12지신상은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는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된다.

 

 

 

 

원성왕의 이름은 경신이며 내물왕의 12대 후손으로 독서삼품과를 새로설치하고 벽곡제를 늘려쌓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왕릉이 만들어지기 전에 원래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의 모습을 변경하지 않고 왕의 시체를 수면 위에 걸어

 

장례하였다는 속설에 따라 괘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봉분에서 떨어진 입구에는 동.서.남.을 지키는 4마리의 사자상, 1쌍의 문.무인석과 석화표가 세워져 있다.

 

 

 

 

후대에 조성되는 고려와 조선시대의 왕릉 구성에 있어서 모범이 되었던 왕릉이라고 할수 있다.

 

 

 

사자상을 자세히 보면 왠지 익숙한 모습이지 않는가.

 

불국사 다보탑의 사자상과 많이 닮아있다.

 

원성왕의 재위때 불국사가 만들어졌다고 하니 닮지않으면 더 이상하지 싶다.

 

두번째의 방문이지만 가물어서 그런지 잔디와 소나무의 푸른빛이 약해보여서 왕릉의 아름다움이 다소 덜 한것 같다. 

 

경주를 여행하신다면 꼬~옥 들러보길 권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