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수학여행때 오죽헌을 처음 방문을 하였다.
그땐 이런 모습이 아니였는데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는가 보다.
휴가철이라서 그런지 매표소엔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새로운 곳의 방문이라서 그런지 무더위에도 표정은 밝다.
입구로 들어서자 넓은 대로와 잘 정돈된 공원이 보인다.
공원 한쪽을 차지한 율곡 이이선생님의 동상앞엔 기념사진을 찍고있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양보의 미덕이 필요한 곳인것 같다.
중학교때 한번 방문한곳이지만 지금 다시 생각하니 기억이 생소하다.
넓은 지역 때문인지 관람객들이 많아도 쾌적한 관람이 가능하다.
무더위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것을 보니 우리에겐 율곡 이이선생님은 너무도 친숙한 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오죽헌은 율곡 이이선생님이 태어난 곳이다.
오죽헌은 수재 최응현의 집이었다고 한다.
친인척 들에게 여러번의 상속을 통하여 권처균이라는 분에게 상속이 되었는데 집 주위에 검은 대나무가 무성한 것을 보고
자신의 호를 오죽헌(烏竹軒)이라고 지었는데 이것이 후에 이 집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오죽헌은 조선전기 민가의 별당에 해당하는 건축물이라고 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면 건물로 4칸짜리 대청과 2칸짜리 방과 마루로 구성돼있다.
대청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천정은 고미반자를 두었으며 삼면은 창호문으로 둘렀다.
주심포와 유사한 이익공계 형식을 보이고 있어, 주심포 집에서 익공식 집으로 넘어가는 변천과정을 보여준다.
한옥의 아름다움을 느껴보기에도 아주 좋은곳이다.
단아한 멋이 일품인 한옥과 정원의 풍성함이 어우러지니 너무나 환상적인 모습이다.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전통가옥에서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제일 바쁘다.
문성사...
1975년 오죽헌 정화사업때 율곡 이이선생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지어진 사당이다.
‘문성’은 1624년 8월 인조대왕이 율곡 선생에게 내린 시호로 '도덕과 사물을 널리 들어 통했고 백성의 안위를 살펴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
(道德博聞 安民立政)'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 곳 몽룡실에서 율곡 이이선생님이 태어남으로써 오죽헌은 더욱 유서 깊은 곳이 되었다고 한다.
1963년 1월 31일 보물 제165호로 지정되었다.
아이들에겐 역사속의 인물을 알아볼 수 있는 교육의 현장이다.
주변의 오래된 나무들과 건물의 조화로움이 부럽기만 하다.
이런 곳에서 살수만 있다면 삶의 흐름조차 달라질것 만 같다.
몸과 마음의 평온함을 전해줄것만 같은 주변의 풍경에 기운이 절로 난다.
아이에겐 지루한 공간일수도 있지만 옛것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지 미소엔 즐거움이 묻어난다.
현재와 과거를 비교하는 재미도 있다.
현재의 편리함 보단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옛집에서의 생활은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앞에 있는 서화는 율곡제에 출품된 작품들이다.
뜻은 알수없지만 서체의 어우러짐이 보기가 좋다.
휴가철이라서 그런지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많이 보인다.
오래된 고목들이 많아서 꼭 숲속에 들어온듯한 느낌이 든다.
어제각...
율곡 이이선생님의 격몽요결(擊蒙要訣)과 어린시절 사용하였던 벼루를 보관하기 위하여 지은것이라 한다.
격몽요결(擊蒙要訣)과 벼루과 있고 오천원권 지폐도 보관되어 있다.
오천원권 지폐에는 오죽헌과 벼루가 도안되어있다고 한다.
자연을 거스리지 않으니 담장조차 멋스러움을 자아낸다.
이시대의 건축기술이 아무리 띄어나다 하여도 세월만큼은 모방할수 없을것 같다.
1788년 정조 임금은 율곡이 어릴 때 쓰던 벼루와 친필로 쓴 격몽요결(擊蒙要訣)이 오죽현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듣고 그것을 궁궐로
가지고 오게 하여 친히 본 다음 벼루 뒷면에는 율곡의 위대함을 찬양한 글을 새기고 책에는 머릿글을 지어 잘 보관하라며 돌려보냈다고 한다.
당시 임금의 명을 받은 강원도관찰사가 이를 보관할 수 있는 집을 지었는데 그것이 어제각이다.
여러번 정비사업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어느곳 하나 손상된 곳 없이 잘 보존되고 있어 고맙기만 하다.
우리 민족사의 대선현(大先賢)이신 율곡 이이선생이 태어났던 오죽현을 둘러본 감회가 새롭다.
오죽현을 지키고 있는 나무의 모습이 신기하다.
연리지 처럼 가지가 서로 붙어있다.
오죽헌 관람을 끝내고 나오면 율곡 기념관을 만날수 있다.
율곡 기념관에는 사임당과 그 자녀들이 남긴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오죽헌의 전경을 볼수있는 영상물을 볼수가 있다.
사임당은 4남 3녀를 두었는데 그중 맏딸 매창, 셋째 아들 율곡 이이,
넷째 아들 옥산 이우는 학문적, 예술적으로 성취를 이룬 인물이다.
율곡 이이의 유품으로는 율곡전서와 간찰이 전시되어 있다.
율곡전서는 이이의 저작을 집대성해 놓은 책으로 전체 23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간찰은 짧은 글이긴 하나 본인이 직접 쓴 것이어서 이이의 생활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사임당의 유품으로는 습작매화도, 초서병풍, 초충도병풍 등이 전시되어 있다.
초충도는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식물과 벌레를 소재로 그린 그림으로,
사소한 사물을 섬세하게 조형화한 사임당의 재능을 살필 수 있는 대표적인 유품이라 할 수 있다.
율곡 이이선생의 성장과정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있다.
겨례의 참 스승 율곡 이이선생님의 간략한 설명을 볼수있다.
뜻과 내용을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율곡 이이선생님의 업적을 기리기에는 충분하다.
해설하시는 선생님이 있어서 시간이 된다면 함께 율곡 이이선생님에 대해서 알아보는것도 좋은 추억이되지않을까.
이해하기 쉽도록 영상물을 볼수도 있으며 검색화면을 통해서 그 내용을 알아볼수도 있다.
옛 성현의 깊은 뜻은 알수가 없지만 역사책에서만 만날수 있었던 율곡 이이선생님을 새롭게 돌아볼 수 있었던 좋은 계기가 되어주었다.
무엇보다도 아이와 함께한 여행이었기에 더욱 뜻깊고 소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