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성은 백제의 수도가 공주였을 때 공주를 지키던 백제의 산성이다.
금강변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산성으로,
원래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고쳤다.
쌓은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며,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공산성으로,
조선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렀다.
동서로 약800m, 남북으로 400m 정도의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4방에 문터가 확인되는데, 남문인 진남루와 북문인 공북루가 남아있고
동문과 서문은 터만 남아있었는데,
1993년에 동문터에는 영동루 서문터에는 금서루를 복원하였다.
[금서루]
공산성 4개의 성문가운데 서쪽에 위치한 문루이다.
성안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럽게 되었다가,
1859년에 편찬된 공산지 등의 문헌 기록과 동문 조사 자료 및 지형적 여건을 고려하여 1993년에 복원하였다.
현재 문루는 본래 서문이 있던 위치에서 약간 남쪽으로 이동하여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로 지어졌다.
금서루는 비록 새롭게 복원된 모습이지만 조선시대 성문 문루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암문·치성·고대·장대·수구문 등의 방어시설이 남아 있으며,
성 안에는 쌍수정·영은사·연지·임류각지, 그리고 만하루지 등이 있다.
또한 연꽃무늬 와당을 비롯하여 백제 기와·토기 등의 유물들과 고려·조선시대의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백제 멸망 직후에 의자왕이 잠시 머물기도 하였으며,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지이기도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김헌창의 난(822)이 일어나기도 하였으며,
조선시대 이괄의 난(1623)으로 인조가 피난했던 곳이기도 하다.
백제 성왕 16년(538)에 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의 백제 도성이었으며,
이후 조선시대까지 지방 행정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큰 중요한 유적이다.
이동경로 중 가파른 언덕길에는 나무계단을 만들어 놓아 한층 운치 있고,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속세를 떠나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로우며 편안하게 삶) 하는 마음이 든다.
[공산성 건물지]
옛 건물이 있었던 자리인데 보존을 잘 해놓았다.
백제의 도성이었던 적이 있어서 그런지 성안에는
옛 건물지의 터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어 공산성의 규모를 짐작할 만 하다.
[숲 속 쉼터]
천연의 재료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보니 숲 속의 맑은 공기를 맘껏 맡으며
휴식을 취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쉼터는 없을 것 같다.
울창한 숲에서 바라보이는 화려한 전각이 임류각이다.
단청의 채색이 거슬릴만한데도 자연의 색을 닮아서 그런지 조화로움이 느껴진다.
[임류각]
백제 제24대 동성왕 22년에 왕궁 동쪽에 지은 건물이다.
높이가 15m에 이르는 고층으로 왕과 신하들의 연회 장소였을 것으로 추정 된다.
[임류각]
1980년 공산성 발굴 조사과정에서 임류각 터를 발견하고,
문헌 기록및 발굴 조사 기록을 근거로 2층 누각으로 복원하였다.
화려하게 치장된 단청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질서 정연한 배열과 반복된 무늬들이 백제의 문화의 우아한 멋과 섬세함을 엿볼 수 있다.
현재 임류각의 단청 문양은 무령왕릉에서 나온 장신구 및
무덤방의 벽돌에 남겨진 무늬를 많이 사용하였다.
2층 누각에 올라서면 사방으로 펼쳐진 숲의 모습이 압권이다.
푸른 숲의 싱그러움과 옛 건물의 아름다움에 취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깊이 빠져든다.
왕과 신하들의 연회 장소였다고 하니 화려함의 극치를 달린다.
임류각을 지은 동성왕은 다음 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고 한다.
세월의 무상함이 떠오르는 순간이기도 하다.
자연을 벗 삼아 풍류를 즐겼을 옛 선조들의 삶이 부럽기도 하다.
많은 기둥을 놓고 그 위에 마루를 올렸으며, 양편에 계단을 만들어 누각 위로 오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백제 건축물의 진수를 보든듯 견고하고, 섬세하고, 화려함이 뛰어난 건축물이다.
누각 위에서는 금강의 모습을 한눈에 바라볼 수가 있고 주변 경관 또한 뛰어나다.
백제의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 있는 임류각의 전체적인 모습도 뛰어난 균형미를 보여준다.
저 멀리 보이는 강이 금강이다.
백제의 젓 줄이었으며 시대가 변하였지만 현재에도 공주시민들에겐 소중한 강으로 남아있다.
강 주변 산으로 밤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서 밤꽃 향기가 코 끝을 자극한다.
공산성의 재미는 성벽 길을 걸어보는 것이다.
길게 이어진 성벽 길을 따라가며 만나는 주변 경관과 성루에 올라
옛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재미가 힐링의 묘미를 더해준다.
[광복루]
공산성 동쪽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2층 누각으로, 공산성 안에 주둔한 군대를 지휘하던 중군영의 문이었다.
원래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 옆에 있던 것을 일제 강점기에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웅심각으로 불렀는데,
1946년 4월에 김구 선생과 이시영 선생이 와서 나라를 다시 찾았음을 기리고자
광복이란 이름을 붙이게 됨으로써 누각 명칭이 광복루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공산성 깃발이야기]
공산성 성벽의 동서남북에 배치한 깃발은 송산리고분군 6호분 벽화에 있는 사신도를 재현한 것이다.
사신도는 동서남북의 방위를 나타내고 우주의 질서를 지키는 상징적인 동물로 외부의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의미가 있다.
[공산성 깃발이야기]
깃발의 바탕색은 황색이다.
이것은 백제의 나라색이며 백제시대 사람들은 황색을 우주의 중심이 되는 색으로 생각하여 중히 여겼다고 한다.
그리고 깃발의 테두리는 사신도의 각 동물이 상징하는 색을 반영한 것이다.
깃발의 배치는 송산리고분군 6호분에서 사신도가 발견될 당시 사신도가 벽면에 그려져 있던 위치이며
동쪽의 청룡, 서쪽의 백호, 남쪽의 주작, 북쪽의 현무를 동서남북 각 방향에 따라 배치하였다.
비탈진 경사면을 따라 토성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성루가 자리한다.
군사적 요충지였던 공산성의 모습도 오늘에 이르려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소중한 곳이 되었다.
개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소로를 따라 성루로 걸어오는 과객의 모습이 연상되는 성루의 풍경이다.
공산성 내에서 오래도록 눈길을 사로잡아준 영동루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듯한 풍경만 아니라면 그냥 과거 속에 머물고 싶을 정도로
옛 모습이 주는 안정감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예전에는 치열했을 전쟁터였겠지만
지금은 시골의 한적한 오솔길 마냥 토성의 모습에서 정다움이 물씬 풍겨난다.
그 당시에는 행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거나 전시에는 군졸을 지휘하던 망루였겠지만
옛 건축물의 아름다움은 오늘날의 현대식 건물도 따라올 수 없는 우아함과 멋스러운 자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누각 안에는 이렇게 큰 마루가 놓여 있다.
과거에도 실제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평상시에는 모르겠지만 전시에는 상당히 움직임에 방해가 됐을 것 같은데...ㅎ
망루에서 내려다보는 주변의 모습도 볼만하다.
색이 바랜듯한 단청이 더 친근감이 든다.
망루 위쪽의 토성 길을 따라 걸어 내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주변의 풍경과 참 잘 어울리는 곳이다.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옛 건축물이 주는 아름다움과 자연의 싱그러움이 만들어 내는 청아함에
발길을 재촉하지 못하고 자꾸만 뒤돌아 보게 된다.
[공산성 영동루]
공산성 4개 성문 가운데 동쪽에 설치된 문이다.
이미 무너져 없어진 것을 1980년에 발굴 조사하여 건물의 하부 구조를 확인하였다.
성문의 너비는 2.5m였고, 문옆 양쪽에서 문을 지탱하고 있던 문지석을 원래 모습대로 찾아내었다.
발굴 조사에서 얻은 자료와 1859년에 편찬된 공산지의 기록을 바탕으로 1993년에 2층 문루로 복원하였다.
잊혀진 문루의 명칭은 2009년 시민들의 공모를 통해 영동루라고 지었다.
영동루 출입구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자연이 주는 상쾌함이 몸과 마음에도 무한한 에너지를 전해 주다 보니 보는 내내 활기차고 즐겁기만 하다.
영동루 출입구 천장에는 구름 속에서 노니는 용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전혀 무섭지도 않고 친근감이 드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영동루를 지나 조금만 내려오면 금새 진남루가 나타난다.
경사진 비탈길을 내려가며 굳건히 서 있는 망루와 누각의 모습을 서로 비교해 보는 재미도 남다른 재미를 준다.
때론 굳건하고 웅장한 모습을, 때론 아름다운 미가 느껴지는 망루와 누각의 모습에서 백제 건축물의 뛰어남을 살펴볼 수가 있다.
[공산성 진남루]
공산성의 남문으로 조선시대에는 삼남의 관문이었다.
토성이었던 공산성을 조선 초기에 석성으로 다시 쌓으면서 세운 문루이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 고쳐지었는데, 지금 있는 건물은 1971년에 전부 해체하여 원래대로 복원한 것이다.
높은 축대 위에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건물을 세워 2층 누각의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촘촘히 쌓아올린 성벽의 모습이 철옹성을 연상케 한다.
별다른 도구들이 없었던 그 당시에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이용한 성의 축성술은 모든 건축물의 의뜸이 아니었을까.
전국의 둘레길이 유명세를 타고 붐이 일어나고 있지만 성곽의 둘레길도 그에 못지않은 매력이 넘쳐나는 곳이다.
길지 않는 코스이지만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힐링의 묘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주변으로 오래된 고목이 그늘이 되어주고 있어서 무더위 걱정도 없이 가족과 함께 한다면 즐거운 대화와 함께 오붓한 시간도 가질 수가 있다.
[공산성 연못]
백제가 475년에 한성에서 웅진으로 수도를 옮긴 직후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왕궁지 연못이다.
1985~1986년에 걸친 왕궁터 발굴 조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공산성 연못]
연못 안에서는 연꽃무늬 만자 무늬 막새기와, 벼루, 등잔, 삼족토기 등 백제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들이 나왔다.
연못은 대접 모양으로 자연석을 정연하게 쌓아 만들었는데, 윗부분 지름이 7.3m, 바닥 지름이 4.73m, 깊이는 3m에 이른다.
[인절미의 고장 공주]
인절미는 찹쌀을 시루에 익힌 다음 그것을 절구에 찧어 조마맣고 네모지게 잘라 콩고물에 무쳐 먹는 떡이다.
그런데 왜, 인절미라 불렀을까?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인조는 이괄의 난을 피해 1624년에 잠시 공주에 피난을 온 적이 있었다.
피난 중에 우성면 목천리 근처 임씨 댁에서 콩고물에 무친 떡을 진상하였다.
왕은 시장한 참에 연거푸 몇개를 먹더니,
"맛이 있구나. 그런데 떡은 떡인 모양인데, 대체 이름이 무엇이오?"
하고 물으니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떡 이름이 있을텐데 아무도 모르니, 그것참 기이한 일이오. 근데 이 떡은 어느댁에서 만들어왔소?"
"임씨 댁에서 만들어 진상하였습니다.
" 왕은 한동안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임씨라...임씨라...그것참 맛이 절미로다."
그리하여 임씨가 진상하였다 하여 이때부터 임절미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임절미"는 발음하기 편하게 "인절미"로 바뀌고,
공주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져 "공주떡"이 되었다.
[공산성 쌍수정]
1734년 (영조 10) 에 관찰사 이수향이 인조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자이다.
인조는 이괄의 반란 (1624) 을 피하여 공주로 피난을 와 6일간 공산성에 머물렸는데,
인조는 이곳에 서 있던 두그루의 나무 밑에서 반란이 진압되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난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한 인조는 자신이 기대었던 쌍수에 정삼품의 작위를 내리고, 서울로 돌아갔다.
이때부터 공산성을 쌍수산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수향이 관찰사로 부임하여 나무가 늙어 없어진 자리에 삼가정을 건립하였는데 이 건물이 쌍수정이다.
여유롭게 성벽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말 보기가 좋다.
가족과 함께 연인과 함께라서 더 행복한 시간.
가끔 성벽 위의 작을 길로 걸어가면 아찔함과 함께 짜릿함도 느껴볼 수가 있다.
높지 않다고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급경사 진 면이 전해주는 압박감이 상당히 크게 느껴진다.
성벽 길에서 바라보는 도시속 풍경.
유난히 눈에 뛰는 건축물이 보인다.
파리의 개선문을 닮을 듯한 형태가 시선을 잡아끄는데
사용된 벽돌들이 무령왕릉의 벽돌의 모양을 본뜬듯 하다.
어울릴 듯 아닌듯한 모습이 이채롭다.
전체의 성벽 길을 걸어보지는 않았지만 푸른 자연 속에 숨 쉬는 공산성의 아름다움은
충분히 느껴볼 수 있었던 즐겁고 행복한 역사 탐방길이었다.
공산성 안에서는 다양한 체험놀이를 즐겨 볼 수가 있다.
활쏘기 체험, 백제 왕족 의상 체험, 백제 왕관, 무령왕릉 만들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다.
매주 토, 일요일에는 웅진성수문병근무교대식이 치러지기 때문에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시 정각에 교대식이 거행된다고 하니 놓치지 말도록 하자.
성벽 길을 따라 때로는 급하게 내려가는 경사 길을 걸어내려오는 발걸음을 조심히 하고,
잠깐 멈춰 서서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산성의 정취에 빠져들어도 좋을 것 같다.
공산성은 연중무휴(설과 추석 당일 제외)로 개방된다.
입장료는 어른 1,200원(단체 1,100), 청소년 800원(단체700), 어린이 600원(단체 500),단체는 20인 이상,
경로증 소지 시 무료. 주차장 이용료는 대형, 소형 모두 무료. 문화유산해설사 해설 가능,
기타 이용문의는 공주시 관광 안내소 041-856-7700 / 840-2266
방문한 날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무료관람이 가능하였다.
저렴한 입장료에 옛 성의 정취와 백제 건축물의 우아한 멋에 취해보는것도 아주 좋은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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