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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사진관

문화의 향기 전주 경기전, 전동성당, 풍남문을 둘러보다


한옥마을 근처에 경기전과 전동성당 풍남문이 있습니다.
거리가 고만고만하여서 걸어다니면서 보는 재미가 솔솔하죠.


경기전은 태조의 어진이 모셔져있는 곳이며, 경기전에는 두 개의 숨은 문화코드가 있는데, 하나는 경기전 정문 밖 도로가에 있는 하마비요,
또 하나는 진전의 거북이 이야기입니다.

이곳에 이르는 자는 계급의 높고 낮음,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리고 잡인들은 출입을 금한다는 뜻이고,
조선왕조의 상징인 태조어진을 봉안한 곳이어서 이 수문장의 위력은 대단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진전에는 거북이가 붙어 있는데, 경기전을 완성한 목공이 그 영원함을 위해 지붕에 암수 두 마리의 거북이를 올려놓았던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거북이가 물에서 살고 진전이 목조건축인 점에서 화재막이용 거북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어진을 보러가는 보도 중 출입을 통제한 길이있습니다.
아마도 예전에는 왕족만 걸어다녔지 않았을까요.
좌, 우 양쪽으로 작은 보도길이 있는데 이곳으로는 중신들이 다녔겠죠...아마도 민초들의 출입은 통제가 되지않았을까요.


한옥마을과 그 주변이 넓어서 그런지 관람객들이 한곳으로만 몰리지않아서 넉넉한 마음으로 둘러보니까 더 좋았던것 같아요.


크고 작은 문 모양은 다르지만 용도는 다 같았겠죠.
신분의 고, 하가 존재하는 한은 달라지지 않는 풍속이겠죠.


주변에 오래된 나무들이 많아서 옛건물과 조화롭게 어울리니 뛰어난 풍광을 자랑합니다.
많이는 아니지만 한켠데 대나무도 자라고 있습니다.


문서 보관소 같은 역활을 하는 건물입니다.
실록을 보관하였다고 하는데 수많은 전란을 겪으면서 사라진 자료들의 아쉬움이 들기도 합니다.
폐쇄적인 모습이 이곳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것 같습니다.


그때 그시절의 사람들은 간곳이 없지만 오래된 나무는 현재에도 많은이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말하고 싶은 사연들도 많겠지만 묵묵히 제자리에서 후세의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이런곳에 왠 사리탑인가 했는데 예종의 태반을 모셔놓은 태실이라고 합니다.
태항아리는 일본 거시기 들이 훔쳐갔다합니다.
그래도 다행인건 다른것들은 보존되어서 지금 이자리에 모셔졌다고 합니다.

나라침탈도 모자라 문화재 침탈을 서슴치 않는 일본 거시기들을 하늘도 알고 땅도 알겠죠. 언젠가는...?


경기전 앞에서는 주말 마다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나봅니다.
사자 탈춤이 신명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아이들 처럼 들썩 들썩 어깨춤이 절로 나옵니다.


예나 지금이나 남녀간의 불륜은 화제거리인가 봅니다.
영감님이 마눌님을 팽겨치고 젊은 처자와 기분내기에 거시기 자루 썩는줄도 모릅니다.


우여곡절 끝에 마눌님은 영감님을 만났지만 미색에 눈이 멀어 조강지처를 내치고 말았습니다.
안스럽고 슬픈얘기지만 창과 춤사위로 엮어내니 보는 내내 흥이 돋아납니다.


마지막엔 탈춤까지 공연 프로그램의 순서를 아주 적절하게 만들어 놓은것 같습니다.
얼~쑤 탈춤 한마당에 관람객들의 흥이 최고조에 다다릅니다.


흥겨움에 잔재를 털어버리고 맞은편의 전동성당으로 향했습니다.
높게 솟은 탑신을 바라보니 이국적인 풍경마져 듭니다.


남미의 어느도시에 있는 예수님 상과 닮지 않았나요.


카메라의 각도를 다방면으로 바꾸어 보아도 참 찍기가 만만찬은 건축물입니다.
전동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1791년 신해박해 때에 처형당한
풍남문(豊南門)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건립됐다고 합니다.


곡선미를 최대로 살린 로마네스크 및 비잔틴 양식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이 동양에서 제일가는 성당건물 중의 하나이며,
호남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서양식 건물로, 순교지를 알리는 머릿돌과 순교자 권상연과 윤지충, 유중철·이순이 동정 부부를 채색화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눈길을 끕니다.


1907년부터 1914년에 걸쳐 세워진 전동성당은 순교지를 보존하고 있는 신앙의 요람이며,
처형지인 풍남문 성벽을 헐어 낸 돌로 성당 주춧돌을 세웠다고 하니 일제강점기에 사라진 많은 문화재의 아픔또한 느껴집니다.


전동성당을 지나니 눈앞에 풍남문이 들어옵니다.
전주를 상징하는 전주 풍남문은 원래 전주부성의 4대문 가운데 남문으로, 1905년 조선통감부의 폐성령에 의해 전주부성 4대문중 풍남문만 제외한
3대문이 동시에 철거되는 수난을 겪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의 문화재가 일본 거시기들의 문화말살에 의해 사라졌다하니 마음속에 심화가 일어나네요.

  
전주 풍남문은 전주사람들에게는 전주를 대표하는 일종의 상징물이라고합니다.


터벅 터벅 풍남문을 한바퀴 돌아보니 건축물이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굳건한 위상이 느껴집니다.


지금은 비록 차들과 도심에 갖혀버렀지만 그 옛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소통하는 수문 역확을 제대로 하였겠죠.
갑자기 숭례문 생각이 드는건 왜일까요.


짧은 시간에 돌아보느라고 깊게 생각할 틈이 없었는데 사진 보면서 글을 쓰니 순간의 감정들이 다시 살아나서 기분을 흡족하게 만들어 주는군요.
이 재미에 여행을 다니는가 봅니다.
시간은 금이다 해야할것도 많겠지만 보는 즐거움에도 시간을 투자해보길 권해봅니다...아주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