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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사진관

[전남/화순군/가볼만한곳]천번째 와불이 일어나는 날 새로운 세상이 돌아온다 - 화순 운주사

 

운주사는 천불 천탑으로 우리에게 유명한 곳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으며, 절 좌우 산에 석불 석탑이 각 일천기씩 있고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있다는

내용으로 보아 정말 그때까지만 하여도 석불 석탑이 일천기씩이 실존했다고 보아야 할것이라고 한다.

 

1984년부터 1991년까지 전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네차례의 발굴조사와

두차례의 학술조사를 하였으나 창건시대와 창건세력, 조성 배경에 대한 구체적인 확증을 밝혀내지 못하여

운주사 천불천탑은 여전히 불가사의한 유적으로 남아있다.

 

운주사 불상들은 천불산 각 골짜기 바위너설 야지에 비로자나부처님(부처님의 빛, 광명)을 주불로 하여

여러기가 집단적으로 배치되어있으며 크기도 각각 다르고 얼굴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홀쭉한 얼굴형에 선만으로 단순하게 처리된 눈과 입, 기다란 코, 단순한 법의 자락이 인상적이다.

민간에서는 할아버지부처, 할머니부처, 남편부처, 아내부처, 아들부처, 딸부처, 아기부처라고 불러오기도 했는데,

마치 우리 이웃들의 얼굴을 표현한 듯 소박하고 친근하다.

 

이러한 불상배치와 불상제작 기법은 다른 곳에서는 그 유형을 찾아볼수 없는

운주사 불상만이 갖는 특별한 가치로 평가받는다.

 

또한 운주사 석탑들은 모두 다른 모양으로 각각 다양한 개성을 나타내고 있다.

 

연꽃무늬가 밑에 새겨진 넙쩍하고 둥근 옥개석(지붕돌)의 석탑과 동그란 발우형 석탑,

부여정림사지 5층 석탑을 닮은 백제계 석탑, 감포 감은사지 석탑을 닮은 신라계 석탑,

분황사지 전탑(벽돌탑) 양식을 닮은 모전계열 신라식 석탑이 탑신석의 특이한 마름모꼴 교차문양과 함께

두루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운주사 탑들의 재료로 쓰인 돌은 석질이 잘 바스라져서 오히려 화강암질의 강한 대리석보다

더 고도의 기술을 습득한 불모(석공)님이 아니면 제작이 불가능하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 석질로 빚어만든 탑이 이렇게 수많은 세월의 풍상을 버티어 전해져 오는 것을 보면

이곳의 조형자들의 기술이 가히 최고 수준이었다는데는 반론의 여지가 없을 듯 싶다.

 

운주사 서쪽 산능선에는 거대한 두 분의 와불(미완성석불)님이 누워있다.

조상 대대로 사람들은 “이 천번째 와불님이 일어나시는 날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말을 전해왔다.

 

아마도 운주사 천불천탑은 우주법계에 계시는 부처님이 강림하시어

하화중생의 대 설법을 통한 불국정토의 이상세계가 열리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으로 조성한 대불사가 아닐까싶다.

 

 

 

 

석가탄신일 하루 전의 운주사지만 일주문을 오고가는 인파는 그리많지않다.

황금연휴이고 세월호 참사로 인한 숙연함때문일까 차분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천불 천탑의 소문이 사실일까.

처음부터 웅장한 석탑들이 그 자태를 드리우고 있다.

 

 

 

 

운주사에서 만날 수 있는 석불의 모습은 정말 다양하다.

표정과 크기도 제각각이지만 소박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따스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즈막한 산자락 위에도 석탑이 서 있다.

일명 거지석탑이라고도 불린다는데 탑신이 반듯하지않고 누더기를 연상케하듯

너덜 너덜 하다하여 거지석탑이라고 한다.

 

 

 

거지석탑에서 바라보는 앞산의 정경에서도

오랜 세월은 견뎌온 석탑들이 후세의 인연들과 마주하고 있다. 

 

 

 

 

기나 긴 세월 속에서 많은 석탑과 석불이 유실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아프다.

종교를 믿지않는다 하여도 이렇게 장엄한 풍경앞엔 숙연함이 앞서지않을까. 

 

 

 

 

운주사의 석탑들은 다양한 개성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여러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양식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고 하니 석탑 박물관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탑들의 재료도 잘 바스러지는 석재를 사용하여 조성되었다고 하는데

얼마나 뛰어난 석공의 솜씨이기에 오랜 풍파를 견디고도 이리 굳건하게 서 있는지 보는 내내 감탄스럽기만 하다. 

 

 

 

 

온 세상의 석불과 석탑을 다 모셔온 듯 운주사 경내에서 만나는 석불과 석탑의 수는

아직까지도 그 수가 만만치는 않다.

 

하지만 지금 현재 남아있는 석탑과 석불의 수는 석탑 17기, 석불 80기만 남아있다고 한다.

만약에 천불 천탑이 아직까지 이어져왔다면 그 모습은 얼마나 장관이었을까. 

 

 

 

 

부처님 오신 날이 내일이건만 경내에 설치된 연등의 모습은 단촐하기만 하다.

그래서 더 돋보이는 석탑의 모습이 보기가 좋다. 

 

 

 

 

광배를 갖춘 불상 

 

 

 

 

 석조불감 앞

 

 

 

 

석조불감 뒤

보물로 지정될정도로 독특한 양식을 뛰고 있다. 

 

 

 

 

원형다층석탑

이것 또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의 모습

대웅전 옆에는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분향소가 마련되어 있다.

 

 

 

 

시간이 멈춘 듯 고즈녁한 산사의 모습이 떠 오른다.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지만 부처님 오신 날이 내일인데 조용하여도 너무 조용하다.

 

 

 

 

경내에는 석불과 석탑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 길들이 여럿 보인다.

지금 이 길은 와불이 누워있는 곳으로 이어진 길이다.

두기의 석탑이 오랜 친구인양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바위 위에도 석탑을 만들어 놓았다.

이런 석탑과 석불들이 각 천기씩이나 있었다니 지금 존재하는 것만 하여도 엄청나고 놀랄 일인데

그 당시에는 온 산이 석탑과 석불로 넘쳐났을거라 생각하니 그 불심이야 어떠하였을까. 

 

 

 

 

거북이 형상을 한 바위 위에 세운 탑이라 하여 거북 석탑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공간이 협소해서 전체적인 모습이 나오진 않았지만 석탑 옆으로 길게 나온 부분이 거북의 머리 부분이다.

현장에서 직접보면 왜 거북 석탑이라고 불리는지 바로 알수가 있다. 

 

 

 

 

옹기 종기 모여 따사로운 햇살을 쬐는 듯 모여있는 석불의 모습에서 사랑스런 가족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근엄한 부처님의 모습이 아닌 가족처럼 친근한 모습의 부처님이라 많은 중생들에게 사랑을 받지는 않았을까. 

 

 

 

 

시위불

와불을 지키는 부처라서 시위불이라고 이름지었을까.

무장의 모습을 닮은 듯 하고 근엄하면서도 기상이 느껴지는 석불이다. 

 

 

 

 

낮은 산에 석탑과 석불이 운집해있어서 관람하기에는 힘들지도 않고 어디에 어떤 석탑과 석불이 있을지

궁금증을 담아 걷다보니 오히러 즐겁기만 하다.

 

 

 

 

드디어 두분의 와불(미완성 석불)이 누워계시는 곳에 도착을 하였다.

여기에 계신 두분의 와불이 천번째 와불이라고 한다.

 

 

사진으론 작아보이는데 옆에 사람이 서 있다면 그 크기를 짐작해볼 수가 있을것이다.

 

 

천번째 와불이 일어나시는 날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말이 조상 대대로 전해져 온다고 한다.

 

 

예전에 퇴마록이란 소설에서 와불이 일어나면 이라는 글을 읽었는데

그 글 처럼 우리 나라의 국운이 다시 일어났다면 하는 상상을 소설을 읽으면서 해본적도 있다.

 

 

운주사의 석탑과 석불을 돌아본 느낌은 정말 감동이고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석재가 바스러지는 무른 석재인데도 이렇게 뛰어난 석탑과 석불을

후세에 남길 수 있었던 석공의 기술에 감탄하고 고마움까지 든다.

 

다만 아쉽다면 많은 석불과 석탑이 관람객들에게 너무 개방이 되어있지 않았나 싶다.

 

단단한 화강암도 아니고 보기에도 물러보이는데도

모든 석불과 석탑주변에는 출입을 차단한 차단막 하나 설치가 되어있지 않다.

 

만져볼수도 있고 천불의 마지막인 와불에는 사람들이 올라갈 수도 있을정도로 관리가 허술한것이 너무나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