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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사진관

[전북/군산시/가볼만한곳]근대문화도시 군산에서 역사의 힘을 느껴보자 - 군산근대역사박물관

 


군산 근대역사 박물관은 '역사는 미래가 된다'는 모토로 과거 무역항으로 해상물류유통의 중심지였던

옛 군산의 모습과, 전국 최대의 근대문화자원을 전시하여 서해 물류유통의 천 년,

세계로 뻗어 가는 국제 무역항 군산의 모습을 보여주는 박물관이라 한다.





2011년에 개관한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의 건축디자인은 1920년대 근대도시의 이미지를 형상화하여 디자인하였으며

2010년도 공공디자인부문 우수디자인상을 수상, 자연 친화적인 건축재인 산화 동판을 사용하였고

야간 경관조명은 근대의 보석이라는 주제로 근대문화유산을 소유한 군산의 이미지를 상징화하였다.

야외에도 전시물이 있어서 쉬어가며 돌아볼 수 있는 여유로움을 전해준다.

아이들이 바닥분수에서 물방울이 주는 시원함에 한껏 흥이 살아난다.





전시관 1층은 해양물류역사관으로 무역항 군산의 과거를 돌아보게 한다.

입구에는 대한민국의 연표와 군산에 대한 연표가 나온다.

아이들에게는 역사에 대한 의미를 느껴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기증받은 유물들도 전시되고 있다.

앞에 보이는 가마는 장례를 지낼 때 혼백과 신주를 모시는 작은 가마로 영여 또는 영거라고 불리고 있다.





선사, 삼한시대, 삼국, 고려 시대, 조선 시대의 삶과 문화를 알아볼 수 있다.

시대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생활용품을 보며 시대적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군산의 조창, 고군산군도, 해저유물발굴 등 물류유통의 중심지였던 군산의 과거를 확인하고

이를 통해 군산의 현재와 미래를 통찰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종합영상실을 통하여 관람객의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해방되면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근대 문화유산이 대부분 사라지고 말았다고 하는데

전국최대의 근대문화유산을 보유한 군산이라고 하는데도 솔직히 많은 유물이 보이지는 않는다.





항구도시답게 1층 로비에 대형 등대가 설치되어 있다.

현존하는 등대인 것 같은데 어느 곳의 등대인지는 기록을 하지 않아서 아쉬움이 든다.





2층으로 올라오면 작은 휴게소와 그 옆으로 이어진 야외 공간이 나온다.

군산의 내항을 조망할 수 있는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어 군산의 또 다른 모습을 두 눈에 가득 담아올 수 있다.





2층은 근대생활관으로 1930년 일제의 강압적 통제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치열한 삶을 살았던 군산 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한 공간이다.

근대역사박물관에서 가장 볼거리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아픔의 역사, 수탈의 역사지만 군산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녹아있는

1930년 시간여행 속으로 떠나볼까 한다.





[홍풍행]

화교 왕흥신씨가 영동상가에서 운영하던 식료품 및 잡화 취급 상점이다.

눈에 익숙한 물건도 많이 보인다.

그 시대를 살지 않았지만 대부분 물품들의 용도를 알 것 같다.





[군산 미곡취인소와 콩나물 고개 위의 토막집]

미곡취인소는 미두장으로도 칭하는데 일제강점기 증권거래소라고 할 수 있다.

'미두'란 곡식을 사고팔면서 시세 차익의 이익을 얻고자 하는 일종의 투기행위라고 한다.

이곳에서 전라북도 일원의 미곡가격을 결정하였다.

토막집이란 일제강점기 조선인 도시빈민들이 산등성이에 만든 초가집 형태의 주거 집이다.

예나 지금이나 서민들의 애환이 묻어나는 장면이다.





[영동상가]

영동상가는 일제강점기 군산 제일의 번화가였다고 전해진다.

일본인들은 이 거리를 행정구역상 영정이란 표현으로 표현의 일본식 발음으로 사까에마찌라 불렀지만

조선인들은 송방거리 혹은 송방골목이라 불렀다.

그 이유는 이곳에서 상가를 운영하던 상인 중 개성상인이 다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잡화점 안은 만물상이라고 하여도 될 정도로 다양한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눈깔사탕이다.

저거 하나 사먹을러고 애쓴 기억이 눈에 선하다.





미곡수취인소 건물 안으로 들어오면 탁본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미곡의 가격과 주판 등 그 당시의 모습도 신선하다.





1920년대 군산미곡취인소(미두장), 1934년 군산지도 군산항 제3차 축항공사 쌀탑 등의 탁본을 떠볼 수 있다.

톡...톡...톡





[형제고무신방]

경성고무는 만월표 고무신발이라는 고무신을 생산하였는데 그 고무신의 인기는 전국최고였다고 한다.

고무신을 신고 학교에 다녔던 나는 정말 반가운 신발이 아닐 수 없다.

고무신에도 서열이 있어 흰 고무신을 최고로 쳐주었다.

냇가에서 물놀이하다가 잃어버리면 경을치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내항과 부잔교(뜬다리)]

우리나라의 쌀들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하여 내항철로를 개설하고 대형 창고와 부잔교까지 건립하여

수탈에 이용하였다고 하니 정말 엿 같은 시절이다.

군산 내항에 수백만석의 쌀이 산덩이처럼 쌓여있었지만, 조선인들은 잡곡과 술찌기미 등으로 주린 배를 채웠다고 한다.





[야마구찌 소주 도매상]

먹을것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술은 어떻게 만들어 먹었을까 했더니

역시나 일본인이 만든 소주 도매상이다.





[군산좌]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극장이다.

이곳에서는 오늘날 극장과 달리 영화와 연극을 병행하여 상영하였다고 한다.

군산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으로 민족운동기금을 만들기 위하여 다양한 공연들과 모임이 이루어졌다.





여긴 근대건축물 배경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다.

그 시절의 옷을 입고도 찍을 수 있으니 추억을 기록하는 사진으로 남겨도 좋을듯하다.





[영명학교]

군산 최초의 사설 한국인 중등교육기관인 영명학교(현 제일중고등학교)는 

기독교 목사인 젠킨 부부에 의하여 1903년 2월에 설립되었다.

1층에는 조선 시대 유물들을 볼 수 있고 2층에는 영명학교의 교실 안을 재현해 놓았다.





광복절이 다가와서 그런지 2층 벽면에는 독립운동가에게 드리는 아이들의 편지가 가득하다.





영명학교 2층에서 내려다본 영동상가 거리

자신들의 이익에 매달려 개화를 방해한 관리들이 원망스럽고

나라를 빼앗기는데 일조한 매국노들이 원망스럽다.





영명학교의 수업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배움을 이어온 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건재하였음을 나는 안다.

생뚱맞게 놓인 가방이 솔직히 미웠다...ㅎ

뒤에도 자리가 있는데 사진의 포인트를 제대로 흩트려 버렸다.





[임피역]

군산에는 근대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다.

근대와 현대를 이어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 아닐 수 없다.

일제의 잔재물일 수도 있지만, 역사를 지을 수는 없으니까 오래도록 보존을 잘하여주었으면 좋겠다.

임피역장으로 분한 깡통 로봇의 웃음이 익살스럽다.





2층의 또 다른 곳에서는 지역 인물 월산 최란수 명창의 삶과 예술전이 개최되고 있다.





아이에게나 나에게도 생소한 인물이지만 종이 그림 위에 색칠하며

그분의 일생을 되돌아보는 것도 여행에서의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월산 최란수 명창은 1931년 2월 12일 임실군 강진면 길담마을에서 태어났다.

7세 때 전주로 이사와 전주 국악원에서 들려오는 판소리에 매료되어 

학교를 그만두고 소리꾼의 길로 들어섰다.





군산의 판소리문화 보존을 위해 그가 한 일생의 삶들이 이곳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군산의 판소리는 많은 제자를 가르친 최산수 명창에 의해 전성기를 맞이하였다고 한다.





최란수 명창의 유품 외에도 군산의 소리꾼들에 대한 설명과 유품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판소리는 한 사람의 소리꾼이 북으로 반주를 맞추는 고수의 도움을 받아 긴 옛날 이야기를

노래와 함께 말로 설명하고(아니리) 몸짓(발림)으로 전달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공연예술이다.





판소리는 17세기 이후 한강 이남 특히 전라도 땅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들어가는 입구에 판소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만화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어

판소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아서 갈 수 있다.





특별전시관에서는 옥구 농민 항쟁 전시공간과 기증자 유물 전시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일제의 폭정에 분노한 군산 시민들의 항쟁이 이후 재판과정에서도

불합리한 판결로 나라 잃은 백성의 고충을 되새기게 한다.

기증자 유물 전시공간은 그 시절 일생생활에 쓰였던 물품들이 전시되어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과거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지만

오늘날 우리는 또다시 역사를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역사는 사실 그대로 기록되고 전해줘 오면 되는데 부끄러운 역사의 한 장면을 만들어 온 장본인의

후손들이 자꾸만 역사를 고치려는 시도는 이제 그만 두었으면 정말 좋겠다.





아이들의 방문이 많은 곳이기에 1층에는 어린이 체험관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어린이 박물관은 군산 바다여행, 바닷가 친구들, 바다 도시 군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놀이형태 전시물을 통해 어린이들이 박물관에 친숙해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한다.





[의용불멸 군산 소방 특별전]

각종 소방도구와 관련 자료 등 총 9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아이와 함께 보기 좋은 곳이다.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근대역사박물관의 외형은 배의 형상을 닮지않았을까 싶다.

의미 있는 박물관 관람이었지만 건물의 규모에 비해서는 전시된 유물들의 양이 많지  않은 느낌이다.

시각적으로 가장 효과를 본 근대 생활관을 제외한다면 전시공간의 알찬 활용이 아쉬운 느낌이 든다.

근대 문화유산이 많지않은 걸 감안한다면 이것에 만족하여야 할 것 같다.